김시성(金是聲) (1602∼1676)

호강공 김점의 장남인 김유손의 후손. 자는 문원(聞遠), 호는 금포(錦浦)이다. 손처눌(孫處訥)과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배웠다. 조선조 인조(仁祖) 14년(1636)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주사랑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있은 후 청나라의 볼모가 되어 심양(瀋陽)에 가게 된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배종하여 3년 동안 충의로 섬겼다. 1640년 황주판관(黃州判官)이 되었으며, 1644년(인조 22) 용천부사(龍川府使)에 이어 이듬해는 강계부사(江界府使)가 되었다. 1648년 함경남도병사, 1649년 충무위부호군, 1651년 경상좌도병사, 1652년 회령부사(會寧府使), 1655년 훈련원도정, 1656년 함경북도병사, 1657년 포도대장, 1662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의 수군(水軍)을 통솔하는 종2품의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가 되었다. 그후 금위좌별장, 춘천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공(公)의 관직에서 특이한 것은 주로 북방지역의 수령(守令)으로 재직하였다는 것이며, 이것은 공(公)이 무예(武藝)에 뛰어난 무신(武臣)으로 국토방위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공(公)이 용천부사(龍川府使)로 재직시 고을 주민을 해치는 호랑이 2마리를 활로 쏘아 단번에 잡았다는 일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공(公)은 불천위(不遷位)로 남하종파에서 매년 음력 9월 22일 오후10시에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금포당”에서 공(公)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저서로는《금포실기 錦浦實紀》가 있으며, 유적지(遺蹟址)로 경북 경산시 하양읍 남하1리에 금포당(錦浦堂)이 있다.

참고 http://www.koreastudy.or.kr/sarim/search_person.php?script=search_person_srch.php&pky=1348http://100.empas.com/pentry.html?i=1174100 金丁鉉(2003),『淸道金氏史』, p199, 도서출판고산자의후예들.

남호서당(南湖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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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읍 남하1리(535-1)에 위치한 남호서당(南湖書堂)은 병자호란 때 많은 공을 세워 가선대부에 오른 청도인 금포(錦浦) 김시성(金時聲)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남호서당은 김시성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정조 10년(1786)에 남호사(南湖祠)를 세운데서 비롯되는데, 철종 6년(1855)에 남호서원(南湖書院)으로 승격되었으나,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28년에 남호서당으로 다시 복원하였다. 서당은 덕골의 산자락에 동향하여 자리 잡고 있는데, 정면에 세워진 산형대문(山形大門)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강당인 금포당(錦浦堂)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강당 뒤에는 내삼문(內三門)을 세워 사당(祠堂)인 충렬사(忠烈祠)로 진입하게 하였다. 강당인 금포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御間)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退間)을 두었다. 창호(窓戶)는 양측 온돌방의 전면에는 머름위에 쌍여닫이 세살문을, 청ㆍ방간(廳ㆍ房間)에는 4분합의 불발기문을, 대청뒤에는 쌍여닫이 골팔문을 각각 설치하였다. 홑처마의 소로수장집이며, 가구(架構)는 종량(宗樑)위에 원형판대공(圓形板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5량가(五樑架)의 구조이다. 사당인 충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데, 양측 박공면(朴工面)에는 풍판(風板)을 설치하였다. 내부는 통칸(通間)으로 처리하였으며 전면의 문비(門扉)는 어칸(御間)에는 2짝의 골판문을, 좌우 협칸에는 1짝씩의 골판문을 설치하였다.

출처:http://museum.gbgs.go.kr/relic/page.htm?mnu_uid=152&cmd=view&dic_no=353 참고문헌:경산시지(경산시), 1997, 경산의 전통건축물(경산문화원), 2003 필자:성태규 위치: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새마을길5길 59-13 (하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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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서원 (南湖書院)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7071)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조선후기 김시성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이칭(異稱) : 남호사(南湖祠), 남호서당(南湖書堂)

정의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조선후기 김시성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 1786년(정조 10)에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김시성(金是聲, 1602∼1676)을 향사하기 위해 남호사(南湖祠)라는 사우로 처음 건립되었다. 1855년(철종 6)에 남호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28년에 남호서당(南湖書堂)으로 다시 복설되었다.

내용 : 김시성은 본관이 청도로 1636년(인조 14)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익찬(翊贊)으로 임명되었다. 익찬 재임 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무사히 심양에 다녀온 공로를 인정받아 귀국 직후인 1646년(인조 24) 황주판관에 임명되고, 이후 용천부사·강계부사·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금포실기(錦浦實紀)』가 있다.

서원은 강당인 금포당(錦浦堂)과 사당인 충렬사(忠烈祠)로 구성되어 있다. 금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홑처마 집으로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구성되어 있다. 충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에 홑처마 민도리집이다.

「남호사입향시고유문(南湖祠入享時告由文)」과 「남호사이건시이안문(南湖移建時移安文)」은 조채신(曺采臣)이, 「상향축문(常享祝文)」은 박길원(朴吉源)이 지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필사본 『김시성기사(金是聲記事)』에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 청도김씨 문중 서원으로 조선 후기에 사우로 건립되어 서원으로 승격하는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금포실기(錦浦實紀)』 『김시성기사(金是聲記事)』 『대구진관하양현지(大邱鎭管河陽縣誌)』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경북서원지』(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실, 경상북도, 2007)

집필자 : 김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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