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칭 | 도안서원(道安書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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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상주시 하동면 판곡리 (원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도곡리) |
건축시기 | 1600년 후반 |
중건시기 | 2000년 복원 |
이건시기 | 1783년 이건 |
소 유 자 | 청도김씨 문중 |
💠 건축 배경 도안서원은 근래에 복원한 서원이다. 1600년 후반에 공성면 도곡리에 도안서당을 세웠다. 1783년(정조 7)에 김우태(金宇泰)가 죽고 난 후에 그가 살던 곳인 공성면 산현리로 옮기면서 묘호를 도안사로 승격하였다. 1870년 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 1999년 본손인 김규호의 노력으로 상주향교에서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당시의 전교인 정경진(鄭景鎭)을 위원장으로 하여, 도안서원을 청도김씨 세거지인 화동면 판곡리 원통산 아래로 장소를 정하여 복원하기로 결의하여 2000년에 복원한 서원이다.
💠 건축 특징 왼쪽에 묘우가 배치되고, 오른쪽에 강당이 있는 좌묘우학의 구조이다. 강당과 묘우사이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어, 강당에서 묘우를 가려면 반드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 건축구성
모현사(慕賢祠) 강당 왼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내부는 마루를 시공하였으며, 전면의 퇴칸은 시멘트로 되어있다. 문은 평범한 빗살무늬 분합문이다. 내부에 김우태, 김시태 두 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계명문(啓明門) 묘정을 출입하는 문으로 강당 왼쪽 묘우를 둘러싼 담장의 남향에 3칸 솟을대문으로 지어졌다.
예락당(禮樂堂) 서원의 강당 건물이다. 묘우 오른쪽에 위치하며, 전면 3칸, 측면 2 칸의 팔작기와집이다. 가운데 1 칸은 마루로 시공되었으며, 양쪽은 온돌방이 시설되어 있다. 마루의 문은 사분합문으로 여름이면 들어 올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서원중건비 강당의 왼편에 세워진 비석으로, 서원을 옮겨 중건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 흰색 화강암 받침에 검은색 돌에 도안서원중건기를 새긴 것이다.
💠 현판 모현사(慕賢祠) 묘우 정면 처마에 걸린 현판이다.
도안서원(道安書院) 건물 중앙 마루 오른쪽 처마에 걸린 강당의 당호이다.
💠 향사일 도안서원의 향사는 매년 음력 3월 25일로 정해져 있다.
가을 향사는 치르지 않는다.
향사 홀기에 따르면, 향사 전날 유사는 서원 내외를 청소하며, 제기도 씻는다. 희생이 서원 문밖에 도착하면 제관들이 복장을 갖추고 살펴본 후, 각자 처소로 들어가 제향에 대한 연습을 한다.
유사는 헌관의 자리를 묘우 중간에 설치하며 북향하여 서쪽을 상석으로 설치한다. 제생의 자리는 그 뒤에 차례로 설치한다. 내삼문 동편 문앞에 헌관의 자리를 마련하여 남으로 줄을 서며 북향하여 서쪽이 상석이다. 관세위를 동쪽 계단아래 설치하며, 행사 시작 오각 전에 장찬자는 사당에 들어가 제수를 진설한다. 알자가 초헌관을 모시고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진설을 점검한다. 집례자가 차례대로 행사를 시작한다.
💠 관련인물
김우태(金宇泰) 1647(인조 25)~1708(숙종 34). 본관은 청도이다. 자는 정수(定叟)이며, 호는 도촌(道村)이다. 처음 호를 짓지 않아 호가 없었으나, 후일 사람들이 선생이 거처하던 지명을 따라 도촌선생이라 하여 호가 되었다. 어머니가 부림홍씨 문광공(文匡公) 귀달(貴達)의 4세손이다. 그 인연으로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3년(숙종 19)에 생원이 되고,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추천으로 광릉 참봉을 지냈다.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이 묘지명을 짓다.
김시태(金時泰) 1647(인조 25)∼1729(영조 5). 본관은 청도이다. 자는 대형(大亨)이며, 호는 사물재(四勿齋)이다. 아버지는 상전(尙銓)이며, 생부는 상택(尙澤)이다. 종형인 우태와 함께 홍여하에게 배웠다. 성균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수직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에 이르렀고, 저서로 《예설류집(禮設類輯)》 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