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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내                            용
지정 기념물 제147호 상주낙화담소나무
한자명 尙州落花潭소나무
유형분류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생물과학 기념물 > 분류학
시대 조선, 수령 약 520년
소재지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477
지정일 2004-04-08

나무는 낙화담(落花潭)이란 자그마한 연못 가운데의 인공섬에 자란다.  이 연못은 고려 말 황간 현감을 지낸 김구정(金九鼎)선생이 이곳 판곡에 은거하면서, 마을 안산인 백화산이 화기를 머금고 있어 김씨와 상극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연못은 최근에 준설하고 새로 단장하였으며 원래의 면적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바로 옆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준신 공의 제단비가 있다.

나무는 높이 13m, 가슴높이 둘레 2m남짓하고 가지 펼침은 사방 20m정도 된다.  김정구 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생각하여 나무의 나이는 600년이라고도 말하지만, 나무의 지금 상태로 보아서는 대체로 1850~1900년경에 심겨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들은 마을의 상징나무로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나무모양이 균형 잡혀 있어 아름답고 자람 상태도 매우 좋다.

찾아가기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서상주IC에 내리면 바로 화서면 소재지다. 여기서 판곡리로 들어가는 이름 없는 지방도를 타면 약 6km쯤에 김준신 의사 제단비를 찾으면 나무는 바로 옆에 있다.

경북 기념물 제147호,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477

출처 : http://webbuild.knu.ac.kr/~sjpark/v1/bbs/bbs.php?cmd=view&board_name=b33&bid=860&curpage=1&s_text=&s_text=&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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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청도 김씨의 충절을 상징하는 상주 낙화담 소나무

매일신문[email protected] 매일신문 입력 2012-04-19 15:03:25

"푸른 소나무 기상에 서려 있는 충과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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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과 화동면에는 각기 특별한 노송(老松)이 있다. 화서면에는 크기나, 자태 등에서 어느 지역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아름다운 반송(천연기념물 제293호)이 있는가 하면, 이웃 화동면에는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와 임란 시 창의한 의사의 충절이 깃든 역시 자태가 아름다운 소나무(경상북도기념물 제147호)가 있다.

반송(盤松)을 보고 판곡리로 향했다. 여말(麗末) 충청도 황간 현감을 하던 청도 김문의 김구정(金九鼎)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기 위해 터를 잡은 곳이다.

청도 김씨의 시조는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1190~1266)다. 고려 고종 때 문신(文臣)으로 이규보, 김부식, 정지상 등과 함께 고려 8대 시인의 한 분이다. 아직 태학(太學)의 학생이었던 시절 거란 전투에 자원했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방패에 용이나 호랑이, 도깨비 등을 그려 호신용으로 삼을 때 유독 선생만은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함께 닦는 것이다'(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고 써 붙여 대장 조충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1218년(고종 5) 장원으로 급제했다. 전주사록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정당문학, 이부상서, 동지추밀원사(종 2품) 등을 역임하고 본관지 오산(鰲山'지금의 청도)군(君)에 봉해진 분이다.

판곡리를 개척한 김구정은 시조의 9세손이자, 청도 김씨가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에 뿌리를 내린 입향조가 된다. 마을은 산이 감싸 안고 앞은 훤히 트여 양지바르며, 땅이 기름져 살기에 적당한 곳이다.

그러나 풍수지리에 밝았던(?) 공의 눈은 달랐다. 멀리 보이는 백화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화기(火氣)를 품고 있어 아무리 단단한 금(金)이라도 녹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김(金)씨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안녕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결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시도했던 작업이 마을에 물을 가두어 두는 일이었다. 공은 마을 한복판에 1천500평 정도의 커다란 못을 팠다. 제아무리 강한 불꽃이라도 막으려는 속셈이었다.

이 못의 아름다운 경치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盧守愼)을 비롯해 성윤해(成允諧), 김흡 등이 자주 찾아와 시를 짓고 세상을 걱정하는 장소가 되었다고도 한다.

못 옆에는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건물 첨모재와 비각이 있어 눈길을 끈다. 비각 안의 김준신의사제단비(祭壇碑'경상북도기념물 제113호 )는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의 후손으로 1820년(순조 20) 통훈대부 사헌부 집의에 추증된 절곡(節谷) 김준신(金俊臣'1560~1592)을 기리기 위해 1850년(철종 1)에 세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