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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번 : "촉석루 창건자 김지대목사 아니다" 글쓴이: 경남일보 등록: 2002-07-13 17:36:02 조회: 1090 "촉석루 창건자 김지대목사 아니다"
진주 촉석루의 창건자가 현재 기록된 진주목사 김지대보다 100여년 앞선 인물인 진주사록 김준이라는 기록이 나와 촉석루 관련 자료를 재검토해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또 이 기록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촉석루 창건 연도도 100년이상 앞당겨지게 됐다. 현재 진주성내 촉석루 안내판에는 촉석루 창건과 관련해 “고려조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1190-1266)가 창건한 이후 지금까지 7차에 걸쳐 중수를 하였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최근 본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교남지(嶠南誌) 53권 14장 진주관안(晋州官案)조에 촉석루 창건자는 김준(金晙·1057-1124)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기록에는“김준은 장원급제를 하고 진주사록으로서 청백리에 뽑혔으며 진주 촉석루를 창건했다”고 되어 있다. 교남지는 1940년 발간된 76권 15책 분량의 향토지로 대구의 정원호라는 사람이 편찬했다. 진주시가 촉석루 창건자로 “고려조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1190-1266)” 로 못박은 것은 진주문화원이 펴낸‘진주문화 21호(1995)’ 에 향토사학자 김범수씨가 ‘촉석루 창건내력’ 을 발표한데 따른 것이다. 진주시는 그동안 뚜렷한 근거도 없이 촉석루가“공민왕 14년(1365년) 창건” 됐다며 각종 기록에 이같이 명시해 왔다. 그러나 김씨가 하륜의 촉석루 기문 가운데 ‘始手於金公 而再成於安常軒 皆壯元也’, 즉 장원급제를 한 ‘김공’ 이 촉석루 창건자라는 구절에 근거해 ‘김공’ 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김공’ 을 고려조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로 단정한 글을 발표하자 이를 그대로 좇아 각종 기록을 이것으로 바꾸었다. 김범수씨는 이 글에서“고려사 등을 살펴보면 충숙왕 때 이전의 장원 급제자중 김씨 성을 가진 인물가운데 진주목사 경력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영헌공실기를 보면 김지대(1190-1266)의 행적중 진주목사를 지냈다는 말이 있고, 또 김지대가 진양에서 상주목사 최자에게 보낸 시가 동문선에 전한다”라고 해 청도 김씨 시조인 김지대 후손들이 발간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 영헌공실기(英憲公實記)에 실린 ‘진주목사의 경력’과 ‘장원급제’를 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 촉석루 창건자인 ‘김공’으로 단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촉석루가 김지대보다 100여년 앞선 인물인 김준이라는 인물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나타나면서 촉석루가 고려조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1190-1266)가 창건했다는 내용은 충분한 고증을 거쳐 이를 바로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촉석루가 고려조 고종 28년(1241년) 진주목사 김지대(1190-1266)가 창건했다는 기록은 진주성내 촉석루 안내판 뿐 아니라 진주시사를 비롯한 각종 진주시 공식기록에 그대로 실려 있다. 한편 이에 대해 지역에서는 “국가 사적지 안에 세우는 공식적인 안내판 문구를 제대로 고증을 거치지도 않고 몇몇사람들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향토 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논문으로 실을 수 있으나, 이를 인용해 사적지내 안내판에 세우는 일은 신중을 기해야 되는데, 정확한 근거도 없이 촉석루 창건에 대해 인용한 것은 행정편의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강동욱 기자 <kang at gnnews.co.kr>
경남일보 2002. 7. 6
위 글에 대한 김범수 향토사연구가의 반박의 글이 아래 경남일보에 게재된 **"촉석루 창건자는 김준이 아니다"**라는 글이다. 이에 대하여 운영자(노철(노경)(32世/은진))는 『진주향토사연구소』에서 펴낸 "金相朝씨의 『촉석루•••』를 읽고"라는 책을 보고 몇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참고로 위 책의 저자도 김범수 향토사연구가이다.
위 책의 11面에 보면 《『교남지』의 진주군(晋州郡) 조를 보면, 고려조 사록 김준(1057~1124)이 "촉석루를 창건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김 준은 20여 세에 문과에 오른 후 진주사록에 보임된 적은 있으나, 목사의 참모에 불과한 초임의 사록이, 그것도 20여 세에 불과한 청년이, 촉석루를 창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회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운영자의 소견으로 촉석루의 창건자가 김준이 아니고, 우리 시조공이 분명하다는 중요한 대목이라 여겨 덧붙인다.
● 32번 글의 답장글 : 촉석루 창건자는 김준이 아니다 글쓴이: 경남일보 등록: 2002-07-13 17:31:12 조회: 806
본보 7월 6일자 8면 ‘촉석루 창건자 김지대 목사 아니다’의 기사에 대해 향토사학자 김범수씨가 이의를 제기해왔기에 그대로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경남일보 2002년 7월 6일자 ‘촉석루 창건자 김지대 목사 아니다’의 제하에서, 교남지의 기록을 들어 ‘사록 김준이 창건했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기에, 아래와 같이 이의를 제기한다.
교남지는 대구의 정원호가 아닌, 성주의 정원호가 1940년이 아닌 1937년에 만든 사찬이다. 사찬이란 개인이 만든 것을 일컫는다. 그는 촉석루를 ‘사록 김준(1057~1124)이 창건했다’고 하였으나, 김준은 진주목 관아의 말단직인 사록이었기에 그가 촉석루를 창건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하륜(1347~1416)이 말한 장원급제한 김공이 누구인지 진주에도 알려진 적이 없었는데, 성주의 정원호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사록(司錄)은 록사(錄事)라고도 하는 정8품이다, 이는 과거에 급제하면 초임으로 보직되는 직위이다. 설혹 사록이 촉석루를 창건했다고 하더라도 그 공은 진주목사에게 있는 것이다. 진주목사는 정3품이자 진주관아의 최 고위직이기 때문이다. 요샛말로 말하면 과장의 공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시장의 업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