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필기 제12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아버지를 대신하여 군에 입대(入隊)하다

고종(高宗) 4년(1217)의 강동(江東)의 전역(戰役)$^{\color{saddlebrown}{1)}}$에 김지대(金之岱)의 부친이 군오(軍伍)에 징집을 당하였는데, 이때 김지대가 태학(太學)의 학생으로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런데 본래 군인들이 모두 방패의 머리에 기괴한 짐승의 모양을 그리는 것이 관례였는데 김지대는 이때 홀로 여기에 한 수의 절구를 지어 쓰기를,

나라의 걱정은 신하의 걱정이고 / 國患臣之患 어버이 근심은 자식의 근심일세 / 親憂子所憂 어버이를 대신해 나라에 보답한다면 / 代親如報國 충성과 효도를 모두 이룰 수 있으리 / 忠孝可雙修 하였다.

이때 원수(元帥) 조충(趙沖)이 군사들을 점고하다가 보고는 놀라서 물어본 다음 그를 불러들여 내상(內廂)$^{\color{saddlebrown}{2)}}$에 배속시키고는 능력에 따라 이를 중용(重用)하였다. 그 이듬해에 조충이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는데 이때 김지대가 일등으로 발탁되었다.

[주D-001] 강동(江東)의 전역(戰役) : 고종 5년(1218)에 고려ㆍ몽고ㆍ동진(東眞)의 연합군이 고려의 강동성(江東城)에서 거란(契丹)의 잔적(殘賊)을 쳐부순 싸움을 말한다. 금(金)나라 말년에 반란 봉기하였던 거란병들이 몽고군 등에 쫓기어 고려의 영내로 들어와서 노략질을 하였는데, 고종 4년 3월에는 태조탄(太祖灘)에서 고려군이 대패하였고 5월에는 이들이 동주(東州), 원주(原州) 등을 침입하였다. 이에 고려에서 토벌군 조충(趙沖) 등을 보내어 이들을 공격하여 마침내 그 주력 부대를 평양의 동쪽에 있는 강동성에다 몰아넣었는데, 이것이 고종 5년 9월의 일이다. 한편 금나라 장군 포선만노(浦鮮萬奴)가 본국을 배반하고 간도(間島) 지방에 동진국(東眞國)을 세웠는데, 이때 몽고의 칭기즈칸이 이를 만주 정복의 기회로 삼아서 합진(哈眞), 찰랄(札剌) 등에게 군사를 주어서 동진국을 정복하여 신복(臣服)시킨 다음, 다시 이들과 합세하여 거란의 잔적들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고려의 동북면으로 내려와서 드디어 강동성으로 향하였다. 그래서 고려의 원수(元帥) 조충이 그 이듬해인 고종 6년 1월에 이들과 힘을 합쳐서 강동성의 거란병을 섬멸하고 몽고와는 서로 형제의 맹약을 맺었던 일련의 전역이다. 이때 포로로 잡힌 거란병을 집단으로 거주시켰는데 이들이 살던 곳을 거란장(契丹場)이라 하였다. [주D-002] 내상(內廂) : 궁중(宮中)이나 각 도의 치소(治所)에 있는 병영(兵營)이다. 상(廂)은 군사가 기식(寄食)하는 곳을 이른다.

순두시(盾頭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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