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사록(全州司錄),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으로 부임.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과거급제(1219년) 직후에 전주사록(全州司錄)에 부임(赴任)하여 힘없는 사람들은 가엾이 여기어 구제하고 세력이 강한 자들은 억누르고 잘못을 귀신같이 적발하니 아전과 백성들이 공경하고 두려워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高麗史』제102권, 列傳 15, 金之岱 列傳;明年 知貢擧 之岱擢第一名 例補全州司錄 恤孤寡抑强豪發摘如神吏民敬畏)

고려사 열전에는 전주사록(全州司錄)에 이어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에 제배(除拜)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高麗史』제 102권, 列傳 15, 金之岱 列傳; 入拜寶文閣校勘 後爲全羅道按察使.)  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견해가 있다.

과거급제 직후에 전주사록(全州司錄)으로 부임하였다고 고려사 열전에서 기록하였는데 이 사록이란 관직은 정7품에 속하는 품계로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보다 직위가 높다. 교감은 9품에 속하는 품계다. 영헌공 김지대는 과거급제후 전주사록으로 관직을 받기전에 먼저 보문각의 교감 관직에 있을 것이다. (김정현(金丁鉉),『영헌공김지대』,도서출판고산자의후예들, 2004,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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