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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riptsize\textsf{안개서린 고요한 맑은 절가에}\\ \textsf{푸르른 첩첩산은 가을빛이 짙었구나}\\ \textsf{구름사이 절벽은 육칠리나 이어졌고}\\ \textsf{하늘 끝 아득히 산봉우리 천만겹이로다.}\\ \textsf{다회 끝난 솔처마에 초생달이 걸려 있고}\\ \textsf{염불마친 평상에 찾아드는 막종소리 흔들리듯 들려오네}\\ \textsf{시냇물도 응당히 벼슬아치 보고 웃으리라마는}\\ \textsf{씻을래야 씻지못할 세속의 자취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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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瑜伽寺)

경북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기슭에 자리한 유가사는 신라 혜공왕(765~780)창건설과 신라 흥덕왕 2년(827) 도성국사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는 천년 고찰로 한 때는 본사를 제외하고 속암이 99개, 거주 승려 3천명의 대가람이었다.

시조공께서는 한때 유가사에 머무셨는데 이때 남기신 한시(漢詩) '유가사(瑜伽寺)'가 이곳 사찰에 전해져 오고 있다.

유가사에서는 2005년 1월 9일 46개월간 다양한 불사를 회향하며, 시방루 일천원불전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낙성에 앞서 2004년 8월 22일 시 현판식을 거행하여 신축한 시방루에 시조공의 시를 적은 현액(懸額)을 새로 걸었다.

시방루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동서남북이 아닌 세상의 방향을 새롭게 만든다는 뜻에서 이름을 붙이고, 황금빛 기와를 얹었다.

위 시의 해설은 유가사에 있는 현액(懸額) 안내문을 전재한 것으로, 한시(漢詩)이다보니 곳곳마다 해설이 조금씩 다르나 원 뜻은 같다 할 것이다. 아래에 계명(啓明)대학교 한문학과  이종문(李鍾文)교수님의 논문에서 이 시에 대한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아래의 사진은 시방루에 걸려있는 한시(漢詩) '유가사(瑜伽寺)' 현판임. 사진제공:김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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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之岱의 시가 그의 삶과 일정하게 대응되는 情緖的 等價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뒤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주제나 내용의 측면이 아니라 운율적 요소 등 形象化나 美學의 측면에서 그의 삶과 일정한 대응 관계를 이루면서 장중한 힘과 웅대한 기상이 언어와 언어 사이의 침묵의 공간에 到底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金之岱의 작품들이 이와 같은 성향을 지니게 된 일차적인 이유는 작품 자체가 지닌 음악적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선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그의 시들에 유난히도 악기나 그에 準하는 聽覺的 시어들이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작 9수에 불과한 작품 가운데 玉笛, 長笛, 玉簫 등 피리 소리가 4번이나 울려 퍼지고, 종소리와 거문고 소리, 휘파람 소리와 韶를 연주하는 소리도 각각 1번씩 곁들여져 있다. 장편의 古詩가 전혀 없는 9편의 짤막한 작품들에서 청각을 자극하는 음악 소리가 이처럼 빈번하게 울려 퍼지는 것은 최항과의 일화에서 드러난 그의 음악적 취향과도 밀접한 함수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이와 같은 음악적 취향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金之岱의 시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채우고 있는 운율적 요소인데, [瑜伽寺]란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는 그 하나의 사례에 해당된다.

(李鍾文,「金之岱의 生涯와 詩世界」(啓明漢文學會,『漢文學硏究』, 제17집, 2003), pp.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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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東文選)』제14권 원본 [칠언율시(七言律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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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sf{유가사(瑜伽寺) 詩가 적혀있는 도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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