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도(淸道). 아우는 공민왕 때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김희(金禧)이며,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낸 한귀(漢貴)의 조카이다. 충렬왕 때에 낭장으로서 행수관(行首官: 어떤 일의 책임자, 즉 수석 관원)이 되었다. 이 때 아우인 김희와 인척인 조순(曺淳) 또한 낭장으로서 행수관이 되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일문삼행수(一門三行首)’라 칭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이상 출처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0160
:attention2: 의(儀)가 한귀의 조카이며 아우가 희(禧)라 하나 청김 대동보에는 한귀의 조카는 한룡의 아들로 희(禧)만 등재되어 있고, 희(禧)의 형(兄)인 의(儀)는 등재되어 있지 않음.


『고려사』 원전(原典)의 중간부분 낭장(郞將) 최종언(崔宗彦)은 공주(公主) 유모 덕분에 견룡행수(牽龍行首)가 되었는데, 김주정이 낭장 김희(金禧)로 그를 대신하게 하였다. 김희의 형 김의(金儀) 및 조순(曹淳)도 또한 낭장으로서 행수가 되었는데, 모두 김주정의 인척이어서 당시 이에 대하여 한 가문에 세 행수가 났다[一門三行首]고 하였다.
이상 출처 : https://db.history.go.kr/id/kr_104r_0010_005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