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 공민왕 9년에 4촌인 김린(金潾)과 함께 급제하였다. 이렇게 4촌간에 동시에 급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당시 같이 방(榜)에 오른 인물로는 수석합격한 포은 정몽주, 목화씨를 전래한 문익점, 시문에 능한 이존오 등이 있다.
김희는 글재주가 뛰어나 왕의 수석비서격인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정3품)와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 그리고 우왕 때에는 감찰기관의 총수격인 대사헌(大司憲) 자리에 올랐다.
학자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서사시(敍事詩)체의 역사책인 제왕운기(帝王韻紀) 재발행시 발문(跋文)의 후제(後題)를 당시 주관을 한 병부시랑(兵部侍郞) 안극인(安克仁)을 대신하여 썼다.
오늘날 남아있는 그 제왕운기의 글씨가 바로 우리의 선조인 김희의 글씨인 것이다.
☞ 김희(金禧) : 7世. 한룡의 子. 嘉陽直(가양직)에서 十九登第(십구등제) 鄭圃隱同榜(정포은동방) 見圃隱集(견포은집) 高麗禑王(고려우왕) 大司憲(대사헌) 配金氏(김씨)成均館大司成(성균관대사성)金臺卿(김대경)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