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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경남 지정 문화재자료 229호$^{\color{saddlebrown}{1)}}$
명   칭 남계서원 (南溪書院)
배향(配享)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
원정공(元貞公) 김한귀(金漢龜)
호강공(胡剛公) 김점(金漸)
분   류 서원(부동산)
수   량 5동
지정일 1996.03.11$^{\color{saddlebrown}{2)}}$
소재지 경남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366
소유자 청도김씨문중
관리자 청도김씨문중

쌍수당 경내에 있는 서원으로 英憲公의 忠孝 雙修의 위업을 숭상하기 위하여 1704년(숙종 30년)에 청도 고을 향인진사(鄕人進士) 朴太古, 朴尙古, 幼學 朴師古, 이경렴(李景濂) 등 82인 사림(士林)들의 중론으로 창건된, 제향 기능을 중시하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1871년에 서원철폐시 훼철(毁撤)된 후 후손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중수하였다. 지금의 강당은 옛 건물을 철거하고 1954년에 중건하였다. 강당 앞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며 배치되고, 그 앞쪽에 소슬대문이 자리잡고 있다. 강당은 정면 6칸 측면 1칸 반으로 가운데 2칸 마루를 두고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두었다. 동재와 서재는 모두 정면 3칸의 작은 건물이다.

  註 1) : 문화재가 국가유산으로 바뀌면서 '지정(등록)번호'가 삭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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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7008)

정의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지대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문화재자료.

개설 : 1704년(숙종 30)에 고을의 유림들이 고려 중기에 평장사를 지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 1190∼1266)의 충효쌍수(忠孝雙修)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996년 3월 11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 1704년에 김지대를 제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가 1868(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1907년(융희 1)에 기존의 낡은 강당을 철거하고 새로 지었다. 1954년에 다시 구 강당을 철거하고 지금의 쌍수당(雙修堂)을 신축하였다. 1986년부터 서원 복원을 추진하여 1989년에 묘우(廟宇)를 완공하였다. 1990년에 김지대의 5세손인 김한귀(金漢貴)와 7세손인 김점(金漸)을 함께 배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용 : 김지대는 청도김씨의 시조로서 1271년(고종 4)에 거란이 침입하자 병환 중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하면서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國忠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묘우(廟宇)인 충효사(忠孝祠)와 강당인 쌍수당의 명칭은 그가 지은 “충과 효를 함께 닦을 수 있다.[忠孝可雙修]”라는 싯구에서 따왔다.

건물은 충효사, 쌍수당, 내삼문인 대보문(代報門), 동재인 원청제(元淸齋), 서재인 강의재(剛毅齋), 외삼문인 상덕문(尙德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쌍수당은 정면 6칸, 측면 1칸 반으로 중앙 2칸에 마루를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충효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쌍수당 우측에 위치한다. 향사일은 음력 3월 첫번째 亥(해)일이다.

참고문헌 : 『경남의 서원』(구산우 외, 선인, 2008) 『조선의 서원』(이호일, 도서출판 가람기획, 2006) 『유교대사전』(유교사전편찬위원회, 1990) 문화재청(www.cha.go.kr) 밀양 문화관광(tour.miryang.go.kr)

집필자 : 선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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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유튜브 동영상](https://youtu.be/Yv31E1TupVY;)

유튜브를 검색하다보니 근래(2021년 5월)에 올린 남계서원 영상이 있어 올립니다. 약 8분 30초의 영상으로 남계서원 이곳, 저곳을 차분히 촬영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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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