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 북계지병마사(北界知兵馬事)

1258年(고종45년) 몽고병(蒙古兵)이 서북도(현 평안북도 압록강 지역과 함경남도 북방 일부) 변방을 침범했는데 당시 지병마사(知兵馬事) 홍희(洪熙)가 여색(女色)을 좋아하고 군무(軍務)를 돌보지 않으니 민심이 흉흉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시조공을 판사재사(判司宰事)에서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로 올려 홍희(洪熙) 대신에 북계지병마사(北界知兵馬事)를 겸직하여 그 지역의 진무(鎭撫)를 맡기니 시조공은 선정(善政)으로 백성들의 민심을 달래어 그들과 합심하여 서북쪽의 40여 성이 몽고병에게 유린되는 것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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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17권


고종 안효대왕 4(高宗安孝大王四)


무오 45년(1258), 송보우 6년ㆍ몽고 헌종 8년


○ 북계 지병마사 홍희(洪熙)를 파면하고, 판비서 성사 김지대(金之岱)에게 대신시켰다. 희가 여색을 좋아하고 국사를 돌보지 않으니, 그 지방의 인심이 이반하였다. ○北界知兵馬事洪煕免,以判秘書省事金之垈代之,煕耽嗜女色,不恤國事,一方離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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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 제11상


무오년 고종 45년(송 이종 보우 6, 몽고 헌종 8, 1258) 5월

○ 김지대(金之垈)를 지북계 병마사(知北界兵馬事)로 삼았다. 지대가 일찍이 전라도 안찰사(全羅道按察使)가 되었을 적에, 최항은 중[僧]이 되어 호(號)를 만전(萬全)이라 하고 진도(珍島)에 머물러 있었다. 그 무리들이 방자하였는데 그들이 청탁하는 것을 지대가 모두 억눌러서 들어 주지 않았다. 일찍이 지대가 진도에 이르렀을 적에 만전이 만만하게 여기어 마구 꾸짖고 만나 주지 않자 지대가 곧바로 당(堂)에 오르니, 당 위에 악기가 있었다. 횡적(橫笛)을 몇 번 희롱하고 거문고를 타니, 그 음절(音節)이 비장(悲壯)하였다. 만전이 흔연히 나와서 보고 말하기를, “마침 몸이 좀 아파서 공이 여기까지 온 줄을 몰랐소.” 하고, 서로 즐겁게 술을 마시면서 10여 가지의 일을 부탁하니, 지대가 즉 각 일을 처결하고, 몇 가지 일은 남기면서 말하기를, “영문(營門)에 가면 곧 될 것이니, 청컨대 그 용사(用事)한 중 통지(通知)란 자를 보내주십시오.” 하였다. 며칠 뒤에 통지가 과연 영문에 이르자, 지대가 그 죄를 문책하여 강물에 던져 죽였다. 항이 정권을 잡으매, 비록 몹시 감정을 품고는 있었으나, 지대는 청렴하고 삼가서 허물이 적기 때문에, 끝내 해치지 못하였다. 이때 몽고병이 북쪽 경계에 가득하였는데도, 지병마사 홍희(洪熙)는 여색(女色)만 좋아하고 군무(軍務)를 돌보지 아니하여 한 지방의 민심을 잃자, 지대가 재략(才略)이 있다 하여 희를 대신하여 진(鎭)에 나가게 하였다. 은혜와 신의로써 무마하여 서북(西北) 40여 성이 그 힘을 입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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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도정란비(西北道靖亂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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