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공(牧使公) 김유손(金裕孫, 9世)공은 조선조 3대 태종과 4대 세종때 무반(武班)의 관직인 부호군(副護軍)과 호군(護軍)을 거쳐 무관직의 최고위직인 절충장군(折衝將軍, 正3品)을 역임하셨으며 사후에 문반(文班)의 관직인 가선대부 나주목사에 추증(贈嘉善大夫行羅州牧使)되시었다. 공(公)을 목사공이라 칭하는 것은 위와같이 나주목사의 관직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공의 아버지는 태종때 재상으로 권신(權臣)이었던 호강공(胡剛公) 김점(金漸, 8世)이시다. 공이 호군 관직에 계실때는 대궐을 지키는 의흥중령(義興中領)의 부서에서 근무하셨다. 공의 부인은 진양정씨(晋陽鄭氏)와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첫째 부인인 진양정씨가 졸(卒)한 후 두 번째로 맞은 부인은 명문가 안동권씨로 권문의(權文毅)공의 따님이시다. 권문의 공은 태종조에 재상의 벼슬을 역임한 분으로, 고려말기 우왕때 후일 조선의 3대 임금이 된 태종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다. 또한 공의 누이동생은 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공궁주(淑恭宮主)가 되셨다. 공은 5명의 아들을 두셨다. 장남은 호우(好雨), 2남은 화우(和雨), 3남 희우(喜雨), 4남 시우(時雨), 5남 영우(靈雨)이다.
공은 사후(死後) 김포군 검단면 여래리(현 행정구역은 인천광역시 서구 마전동)에 안장되셨으며 공을 직계조상으로 받드는 후손(계파)은 남하파(南河派)로부터 영주한저파(榮州閒渚派)에 이르기까지 무려 97개파(개성파 2파 포함)에 이르며 청도김씨 문중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